집 와이파이는 어떻게 동작할까? 공유기, 공인 IP와 사설 IP, 2.4GHz와 5GHz
집에 들어오는 인터넷 회선은 하나입니다. 그런데 그 회선 하나로 폰, 노트북, 태블릿, TV, 로봇청소기까지 동시에 인터넷을 씁니다. 이 당연해 보이는 일상은 사실 거실 구석의 작은 상자, 공유기가 쉴 새 없이 일한 결과입니다. 이번 글에서는 와이파이가 잘 안 될 때 검색하면 나오는 단어들, 공인 IP, 사설 IP, 2.4GHz, 채널 같은 것들이 실제로 무엇인지 코드 없이 정리하겠습니다.
공유기는 사실 네 가지 기계입니다 #
공유기라는 한 상자 안에는 역할이 다른 장치가 여러 개 들어 있습니다.
- 라우터 — 집 안의 기기들과 바깥 인터넷 사이에서 데이터를 중계합니다. 이름 그대로 길(route)을 잡아 주는 장치입니다.
- 무선 액세스 포인트 — 유선 신호를 전파로 바꿔 쏘는 안테나입니다. “와이파이"라는 말이 가리키는 부분이 여기입니다.
- 스위치 — TV나 데스크톱을 케이블로 직접 연결하는 뒷면의 유선 랜 포트입니다.
- 주소 배급소(DHCP) — 새 기기가 접속하면 집 안에서 쓸 주소를 자동으로 나눠 줍니다. 폰을 와이파이에 연결하는 순간 뒤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.
“공유기를 재부팅하면 인터넷이 살아난다"는 민간요법이 자주 통하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. 작은 상자 하나가 네 가지 일을 하루 종일 하다 보면 어딘가 꼬이는데, 재부팅은 그 모두를 한 번에 초기화해 줍니다.
공인 IP와 사설 IP — 우리 집의 대표 전화번호 #
인터넷에서 기기를 찾는 주소가 IP 주소입니다. 그런데 통신사가 우리 집에 주는 주소는 보통 딱 하나입니다. 이것이 공인 IP, 말하자면 우리 집의 대표 전화번호입니다.
집 안의 기기가 여럿이니 공유기는 안쪽에서만 통하는 별도의 주소를 나눠 줍니다. 이것이 사설 IP입니다. 폰의 와이파이 설정에서 보이는 192.168.0.5 같은 주소가 그것인데, 옆집 폰도 같은 주소를 쓸 수 있습니다. 회사의 내선 번호처럼 건물 안에서만 의미가 있는 주소이기 때문입니다.
그러면 폰이 유튜브에 접속할 때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. 공유기가 중간에서 번역을 합니다. “내선 5번(폰)이 유튜브에 보낸 요청"을 “우리 집 대표번호가 보낸 요청"으로 바꿔 내보내고, 답이 돌아오면 기억해 둔 장부를 보고 내선 5번에게 돌려줍니다. 이 번역 작업을 NAT(Network Address Translation, 네트워크 주소 변환)라고 부릅니다. 집 안 기기 수십 대가 대표번호 하나로 인터넷을 쓰는 비밀이 이 장부입니다.
부수 효과도 있습니다. 바깥에서는 우리 집 기기들의 내선 번호가 보이지 않으므로, NAT는 의도치 않게 기초적인 방어막 역할도 합니다. 바깥에서 집 안 기기로 먼저 말을 걸 수는 없는 구조라서, 게임기나 NAS를 외부에서 접속하게 하려면 공유기 설정(포트 포워딩)을 따로 만져야 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.
2.4GHz와 5GHz — 멀리 가는 길과 빨리 가는 길 #
공유기에 와이파이 이름이 두 개 떠서 어느 쪽에 붙을지 고민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. 숫자는 전파의 주파수 대역이고, 성격이 서로 반대입니다.
| 2.4GHz | 5GHz | |
|---|---|---|
| 속도 | 느린 편 | 빠른 편 |
| 도달 거리·벽 통과 | 좋음 | 약함 |
| 간섭 | 많음 | 적음 |
두 대역의 차이는 물리 법칙에서 비롯한 절충입니다. 낮은 주파수는 멀리 가고 벽을 잘 뚫는 대신 실어 나를 수 있는 데이터가 적고, 높은 주파수는 그 반대입니다. 그래서 공유기와 같은 방이면 5GHz, 벽 두세 장 너머면 2.4GHz가 유리한 경향이 있습니다.
2.4GHz의 “간섭 많음"에는 두 가지 사정이 있습니다. 첫째, 오래된 대역이라 이웃집 와이파이부터 블루투스까지 온갖 기기가 몰려 있습니다. 아파트에서 와이파이 목록을 열면 수십 개가 보이는 그 혼잡입니다. 둘째, 전자레인지가 하필 비슷한 주파수로 동작합니다. 전자레인지를 돌릴 때 영상 통화가 끊기는 경험에는 물리적인 근거가 있는 셈입니다. 같은 대역 안에서도 전파는 채널이라는 차선으로 나뉘는데, 요즘 공유기는 한산한 차선을 알아서 고릅니다.
최근의 메시 와이파이는 이 거리 문제에 대한 답입니다. 공유기 여러 대를 집 곳곳에 두고 하나의 와이파이 이름으로 묶어서, 기기가 옮겨 다닐 때 가장 가까운 장치로 자동으로 갈아타게 합니다.
와이파이 비밀번호가 실제로 하는 일 #
와이파이 비밀번호는 출입문 열쇠처럼 보이지만, 실제 역할은 더 큽니다. 접속을 허락하는 것에 더해 공유기와 기기 사이의 전파를 암호화하는 열쇠의 재료가 됩니다. 전파는 공기 중에 퍼지는 방송이라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수신할 수 있는데, 암호화(WPA2, WPA3 같은 표기가 그 방식의 이름입니다) 덕분에 수신해도 내용을 읽을 수 없습니다.
그래서 비밀번호 없는 공공 와이파이는 전파 구간이 평문, 즉 엽서 상태입니다. 다행히 요즘은 주소창의 자물쇠(HTTPS)가 내용물을 한 번 더 봉투에 넣어 주므로 과거만큼 위험하지는 않지만, “공공 와이파이에서는 은행 업무를 피하라"는 조언이 나온 배경이 이 구조입니다.
와이파이가 느릴 때 — 어디가 막혔는지 찾기 #
마지막으로 이 글의 지식을 한 줄 진단법으로 묶어 보겠습니다. 와이파이가 느릴 때 범인은 크게 둘 중 하나입니다. 집 밖(통신사 회선)이거나 집 안(전파 구간)입니다. 공유기 옆에서 잰 속도와 방에서 잰 속도를 비교하면 갈립니다. 공유기 옆에서도 느리면 회선이나 공유기의 문제이고, 옆에서는 빠른데 방에서만 느리면 거리·벽·간섭, 즉 이 글의 2.4GHz/5GHz 이야기로 돌아옵니다.
정리하면 이렇습니다. 공유기는 라우터, 무선 안테나, 스위치, 주소 배급소를 겸하는 상자이고, 대표번호 하나(공인 IP)로 집 안의 내선들(사설 IP)을 NAT 장부로 연결합니다. 두 개의 와이파이 이름은 멀리 가는 길(2.4GHz)과 빨리 가는 길(5GHz)이고, 비밀번호는 출입 통제이자 전파 암호화의 열쇠입니다. 다음에 공유기를 재부팅할 때, 그 작은 상자가 하는 일이 조금은 달리 보이기를 바랍니다.